제이의 끄적이는 나날
3월의 이모저모 본문
11월 말, 부산 영도로 이사 왔다.
12월, 열심히 집을 채우고 정리하며 주변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1월, 운 좋게도 바로 일을 시작했다. 직전 경력이 도움이 되었는지 근처에 위치한 대학교에서 행정원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전 직장에서 결핍을 느꼈던 부분을 채워주는 것 같았다. 내가 속한 부서는 일은 개별로 맡은 영역을 처리하는 것이었지만 팀을 관리하는 팀장이 있었고, 인사에 관련한 것 등의 시스템은 체계적이었다. 출퇴근이 차로 10분 거리며 버스를 타도 30분 정도라 정말 쾌적했다. 하지만 일이 너무 안 맞았던 걸까? 사람이 너무 많았던 걸까? 아니면 그냥 적응하기가 벅찼던 것일까? 첫 달은 처음이니까 부담 속에 다녔고 두 번째 달부터 본격적인 힘듬에 우울감이 찾아왔다. 첫번째와 두번째 회사를 거치면서도 이 정도로 힘들진 않았는데 유난히 견디기 힘들었다. 내 버팀 능력치가 낮아진 건지... 예전 끄적임과 사진을 찾아보니 난 항상 회사 초창기 때 설렘(긍정 회로)과 압박 및 부담을 느껴왔다.
아무튼 집에 오면 에너지가 없어 침대에 누워만 있고 싶은 몸 상태와 갑자기 눈물이 줄줄 나오는 나를 보며 결단을 내렸다. 생활비고 경력 단절이고 여긴 그만두는 것이 낫겠다고. 아마 3월까지 다녔으면 더 병이 낫을 거다...
그래서 백수로 맞이한 3월.
우울감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지경에 이르렀다. 왜냐면 줄곧 해왔던 사무직에서 이런 결과를 맞이하니까 또 다른 곳에 덜컥 입사했다가 같은 전철을 밟는 건 아닌지 고민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확한 원인을 모르니 시작을 하기가 두려웠다. 돈을 벌고 싶어서 취직을 했는데 이 정도밖에 버티지 못한 걸 보면 난 나약한 인간이고 그만큼 절박하지 않은 거겠지.
아무것도 안 할 순 없고 가만히 있어도 심심하니까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그나마 내가 좋아하는 '중국어' 키워드로 모임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시작한 중국어 프리토킹 수업. 대학교 1학년 때 토익 학원 이후로 돈 내고 어학 학원을 등록한 적은 없었다. 당연히 중국어도 마찬가지고... 근데 수업도 아니고 스터디도 아닌 애매한 성격의 이 모임에 꽤나 큰돈을 내고 왔다 갔다 하는 게 말이 되나 싶어서 정말 다닐까 말까 고민을 했는데,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독학만 하다 보면 결국 또 혼자일 테니까 나를 밖으로 이끌어 내주고 사람 만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한 달이 지난 지금은 꽤나 만족하면서 다니는 중이다. 난 이미 1년 치 돈을 냈으니까 열심히 다녀야 해...ㅋㅋ 그리고 다음 주부터는 영어도 시작한다!
그래서 3월은 잘 먹고
잘 쉬고 놀고
조카랑 네찌 보러 서울도 다녀왔다.
그리고, 4개월 만에 방문한 목포.
서울에선 거의 30년을 살았는데 고작 3년 반을 산 목포가 왜 이리도 반갑던지. 그건 정리되지 않은 마음이었다. 부산에 가라고 어느 누구도 떠밀지 않았지만, 스스로의 선택이었지만 이사를 준비한 기간은 3년 반의 시간과 애정을 정리하기엔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정리되는 게 사람 마음이 아닌데, 그렇게 애정했던 도시를 내 생활을 그 터전을 어떻게 단시간에 정리를 하겠느냐고. 그렇다고 다시 목포로 되돌아가고 싶은 것도 향수병을 앓는 것도 아니다. 내가 부산에서 적응이 어려웠던 게 아니라 목포에서의 정리가 너무 급했던 것이라고. 달라진 주변 환경에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았을 거라고,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라고... 목포를 다녀오니 알겠더라. 모든 것이 내겐 급작스러웠던 거라고. 바뀌어버린 모든 환경에 스스로 관리가 안 되었던 것이라고. '적응? 까짓 거 뭐 어렵냐'며 날 너무 과대평가했다.
3월 말, 여전히 춥지만 봄은 온다.
나도 잘 적응해 나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