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의 끄적이는 나날

나의 직업 전환기 본문

Writing

나의 직업 전환기

Jay 2022. 12. 17. 12:21
728x90
반응형

첫 회사는 두 번째 전공인 중어중문학을 살려서 입사했다. 하지만 첫 업무를 끝으로 더 이상 중국어를 사용할 일은 없었다. 국제회의를 운영하고 기획하는 회사였기에 외국어가 메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불만족스러운 게 많은 곳이었지만 장장 5년을 다녔다. 일이 바쁘기도 했지만 연차가 쌓이며 환경도 편해졌기 때문이다. 동시에 점점 도태되는 것 같아서 겁도 났다. 모르는 게 여전히 많은데 후배는 늘고, 책임은 커지는데 난 제자리인 느낌이랄까. 결국 오랜 고민 끝에 퇴사를 했다. 코로나 때문에 타의로 일을 쉬는 마당에 자의로 회사를 그만둔 나를 보며 주변의 걱정과 의문의 시선을 받았지만 나는 앓던 이가 빠진 기분이었다.

퇴사 후 휴식을 위해 찾은 곳은 서울에서 기차로 2시간 반 떨어진 항구 마을 목포였다. 그곳에서 진행하는 한 달 살이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길면 두 달을 생각하고 간 목포에서 나는 일 년이 지난 지금까지 머무르고 있다. 어쩌면 내게는 여유가 필요했던 것 같다.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여유,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여유 말이다. 예전엔 쉼이 필요한 줄 모르고 계속 목표 설정을 하면서 지냈다. 나이에 따라 사회가 설정한 목표인 수능, 대학 진학, 취업, 내 집과 내차 마련, 결혼 등.

쉬는 기간이라고 했지만 사실 프로그램 명칭이 ‘독립 출판 프로젝트’였다. 그래서 처음 한, 두 달은 출판을 하기 위해 글을 썼고 생각보다 일정이 빡빡했다. 다음 한 달은 정말 쉬기 위해 머무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막상 지내다 보니 생각보다 마음에 든 환경에 올해(당시 2021년)까지만 더 있어보기로 하고 자취를 시작했다. 회사를 다니지 않으니 시간 여유가 많았다. 그래서 요트 자격증을 따고, 낭독을 통해 오디오북을 만드는 프로그램을 듣기도 하고, 목공 체험도 하는 등 여러 가지를 시도했다. 다음 직업을 생각한다거나, 자기 계발을 위해서가 아니라 ‘재미’에 초점을 맞췄다. 돌이켜보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직업을 고민하며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헤맸던 시간이었다. 예전에 하던 업이 아닌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평소에 해보지 않았던 것들에 관심도 많이 가졌는데 결국 마음을 이끈 건 ‘중국어’였다.

한때 언어를 사용하는 직업을 꿈꿨다. 하지만 부족한 언어 실력과 경쟁자를 생각하면 떨어지는 자신감을 비롯한 현실적인 문제에 집중하며 의지는 점점 사라졌다. 경력도 쌓였겠다 하던 일이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계속 직장을 다녔다. 그 방향으로 내 커리어가 이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일을 쉬고 나를 들여다보니 마음속에는 여전히 중국어를 공부하고 관련된 일을 하고 싶은 열망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하지 못할 이유’가 아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동안 내 생각이라고 착각했던 많은 것들 속에는 사회나 타인의 기준이 다수 숨어있었다. 쉼을 통한 여유는 나를 찾는 시간이기도 했다. 달라진 환경 속에서 나는 적당히 주변을 차단하고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다.

올 초 마음먹은 직업 전환엔 공부가 필요하다. 이제 막 6개월이 지났고 다행히 여전히 재미있다. 요즘은 오전엔 파트타임을 하고 오후에는 공부를 하며 지낸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니 편하지만 그만큼 계속 주체적으로 움직이고 생각하는 게 가끔은 피곤하게도 느껴진다. 아직 정식으로 직업을 갖고 일을 시작한 것도 아니지만 이 일을 하며 돈은 어떻게 벌지 시간은 어떻게 쓰게 될지 등의 걱정과 고민이 종종 찾아온다. 불안한 마음이 들 때면 그저 하던 루틴을 따른다. 5년 전 회사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신입의 마음으로 말이다. 고민하면서 다니고 버티던 시간이, 그저 내 앞의 주어진 일을 해나가던 시간이 쌓여 경력자가 된 것처럼 지금 하는 일도 멈추지 않고 계속한다면 결실을 맺겠지. 그럼 나도 모르는 사이 또 원했던 모습이 될 것이라 믿는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직업 전환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5년 뒤에는 또 다른 생각을 하며 살고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선택의 기준이 타인이 아니라 나인 건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728x90
반응형

'Writ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 줄 일기  (0) 2022.12.20
너에게  (0) 2022.12.17
한낮의 꿈  (1) 2022.12.17
부츠를 샀다  (0) 2022.12.03
우울에서 기대가 되는 과정  (0) 2022.10.27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