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의 끄적이는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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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꿈

Jay 2022. 12. 17.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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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결에 눈을 뜨니 내가 아끼는 잠옷이 보인다. 누가 저 옷을 입고 있는 거야? 머리는 왜 이렇게 무거운 거지. 누가 손을 올려놓은 것 같은데... 목마르니까 물부터 마셔야겠다. 그런데 바닥이 왜 이렇게 가깝지? 아니, 내 발은 왜 이래?

거울 속 나는 사람이 아니라 반려견인 포포의 모습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생길 수가 있지? 이건 꿈일 거야. 아무래도 조금 더 자야겠다. 그런데 잠은 오지 않고 정신은 너무 말짱하다. 그렇다면 다시 생각을 해 보자. 나는 분명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굉장히 집중해서 일하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목이 뻐근해서 스트레칭을 했고, 옆에서 편하게 자는 포포를 봤다. 그 모습이 너무 여유로워 보여 잠시 부러워했던 것뿐인데 갑자기 포포로 변해버렸다. 판타지 영화를 번역한다고 꿈을 꾸는 거면 다행인데 그렇다기에는 너무 현실 같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참 난감한 그런 현실.

 

번역도 다 했고 감수만 남겨뒀는데, 오후에 최종 메일 보내면 끝나는데 이 일은 누가 하는 걸까? 당연히 나겠지... 그런데 내가 포포로 변한 거면 ‘나’는 누굴까? 저 안에는 포포가 들어있는 걸까, 아니면 게임 속 npc의 역할인 건가?

 

정말 머리 아프다. '내'가 알아서 제출하겠지. 지금 당장은 포포로 변한 내가 문제다.

 

시간은 아직 아침 7시, 밖은 화창하고 '나'는 아직 꿈속이다. 어제 저녁밥을 안 먹어서 그런가 아침부터 배가 고프다. 냉장고에 장 봐 둔 맛있는 음식이 잔뜩 있으니 꺼내 먹어야겠다가 아니라 못 먹네? 요즘 막 나오기 시작한 초당 옥수수도, 옆집 친구랑 화채 만들어서 나눠 먹으려고 산 수박 한 통도, 나른한 오후에 당 보충을 위한 당근 케이크도 마감을 끝내고 시원하게 마시려고 사둔 맥주까지! 다 내 몫이 아니잖아? 저 맛있는 것들을 먹을 수 없다니 포포의 처지가 마냥 좋은 건 아니었다. 강아지로 살기엔 맛있는 맛을 너무 많이 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사료와 오리 고기 간식뿐이라 갑자기 힘이 쫙 빠진다.

 

사람은 밥심으로 살고 강아지는 사료를 먹어야 하는 운명이니, 그래도 먹어야겠다. 다시 사람으로 돌아가면 포포 맛있는 것 좀 많이 사 줘야겠다. 강아지는 강아지 음식만 먹어야 오래 산다는 핑계로 맨날 나만 맛있는 걸 먹고 있었네. 특식도 더 자주 만들어줘야지.

 

사료를 먹었더니 확실히 힘이 난다. 그래서 포포가 맨날 밥 먹고 장난감 가지고 노는 거였구나. 인형을 물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공 던지면 찾으러 가서 침 잔뜩 묻혀가며 질겅질겅 물고 뜯고 하는 게, 이런 느낌이었구나. 나름 재밌네.

이 정도면 운동도 충분히 한 것 같고 이젠 물 좀 마시고 쉬어야겠다. 오전이지만 몸이 바뀐 ‘나’는 자는 중이고 나간다 해도 금세 땀이 나는 계절이니 역시 에어컨 빵빵한 집이 최고다. 저녁에 더위가 한풀 꺾이고 나면 날 데리고 산책을 시켜주겠지.

 

그럼 남는 시간 동안 난 뭘 할 수 있을까? 더 이상의 마감은 없지만, 자유도 없는 몸이 된 것 같다. 하늘에 떠있는 구름이 더 자유로워 보이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잠들면 구름으로 변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구름이 되면 생각은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모든 것은 의문투성이다.

 

그런데 나 다시 사람으로 돌아갈 순 있을까? 내일은 친구들이랑 모처럼 저녁 약속도 있는데, 다음 주는 서핑하러 가기로 했는데 계속 이 모습이면 난 어떻게 되는 거지? 나 대신 또 다른 내가 이걸 다 즐기겠지 뭐. 사람의 기억을 가진 강아지의 몸이라니. 복잡한 것들이 단순해지길 바라긴 했지만 이런 방식은 아니었다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봐도 나오는 답은 없었다. 생각을 반복하다 지쳐서 잠이 들고, 일어나면 다시 집안을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밤이다. 드디어 바깥바람을 쐴 수 있다. 비록 목줄을 차고 있지만 그래도 산책을 할 수 있으니 행복해! 밤공기 좋다. 풀 냄새도 좋다. 나무 향기, 꽃향기도. 강아지로 변하니 온 세상이 냄새투성이다. 킁킁. 그런데 어디서 위험한 냄새도 난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긴장하게 하는 이 냄새는 분명 나와는 다른 종류의 개가 분명하다. 그것도 크고 강한 동물의 느낌이 온다. 얼른 자리를 피해야지. 서 있지 말고 빨리 걷자 주인아. 멀리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숨소리와 발걸음 소리도 들려온다. 점점 다가온다. 더 가까이서 들린다. 더 빠르게 뛰어야 한다. 빨리 도망...

 

아, 꿈이었구나! 책상에 엎드린 채 졸았나 보다. 정말 희한하고 생생한 꿈이다. 내가 겪은 포포의 하루는 잠든지 10분 동안 겪은 일이었다. 책상에서 졸다니 요즘 많은 일을 쳐내느라 피곤하긴 했나 보다. 휴! 돌아오니 기쁘다. 포포는 자기 집에서 잘 자고 있네. 다시는 포포가 되고 싶다는 생각 하면서 자지 말아야지. 그런데 사람인 나의 삶이 진짜일까? 이것도 꿈은 아닐까? 포포가 사람이 된 꿈. 사람의 모습을 원하던 강아지가 사람이 되고, 지금은 꿈속이고. 나는 원래 포포인 거지.

 

내가 포포인지 포포가 나인지.

나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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