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의 끄적이는 나날
[책] 아버지의 해방일지 본문
P201) 어느 쪽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차가운 철제 침대에 누워 수의에 싸이고 있는 저 시신과 내가 적어도 한때는 한 몸이나 같았다는 점이었다. 아버지는 나의 우주였다. 그런 존재를, 저 육신을,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생생하게 시간과 공간의 한 지점을 점령하고 있는 저 육신이 내일이면 몇 줌의 먼지로 화할 것이다.
...
이 대목은 너무 슬프고 무서웠다. 삶의 끝에 대해 종종 생각하곤 하는데, 그 장면이 떠올라서 사랑하는 사람이 더 이상 곁에 없다는, 없을 거라는 그 느낌은 상상만해도 고통스럽다. 유한하지 않아서 아름답다지만 그렇기 때문에 하찮고 슬퍼진다.
아버지에 대한 정지아 작가의 절절한 마음 고백. 아버지 역시 누군가의 자식이고 형제였으며, 남자이고 연인이었다. 천수관음보살만 팔이 천개가 아니고 사람에게도 천 개의 얼굴이 있다. 아버지의 얼굴 중에 몇 개나 보았을까? 어쩌면 평생 알아온 얼굴보다 장례식장에서 안 얼굴이 많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누구나의 아버지가 그러할 터이듯, 그저 본인이 몰랐을 뿐이다.(P249 내용 중)
엄마를 생각하면 애틋하고 금새 눈물이 나오는데 비해 아버지의 존재는 조금 느낌이 다르다. 서먹한 건 아니지만. 한때 아버지는 누구보다도 가까웠을 존재였을 텐데. 첫째인 나를 많이도 예뻐했을 텐데.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이지만. 5살 이전, 아가였던 셋째랑 아빠가 매일같이 헬스장에 갔다가 아이스깔랑(어린아이인 셋째의 발음이 뭉개져서 이렇게 귀여운 단어가 되어버린) 하나씩 먹고 되돌아왔던 그런 날들을 생각하면 내 어린 시절도 크게 다르진 않았을 것이다. 다만 기억을 못 할 뿐. 고3 독서실 다닐 때 끝나는 시간 맞춰서 밤마다 매일 아빠가 데리러 왔었는데. 그러다 가끔씩은 독서실 1층에 있는 삼성통닭에서 치킨 포장해 가서 야식으로 먹기도 하고. 그보다 훨씬 어릴 땐 여름이면 계곡이든 바다든 산이든 놀러 가서 하하 호호 놀았을 것인데. 시간이 흐르니 기억도 휘발된다. 망각할 수 있어 다행이다가도 행복한 기억은 조금 더 천천히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 그래서 기록은 필요해. 행복하든 슬프든 기쁘든 감격스럽든 박제해 놓고 기억하고 싶은 것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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