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의 끄적이는 나날
[책] 디어 마이 프렌즈1,2 본문
그럴 때가 있다. 평소에는 관심도 신경도 없던 것에 눈길이 가고 반복적으로 내 앞에 나타날 때.
구독하는 유투버가 디어 마이 프렌즈를 인생 드라마라고 언급했다. 그냥 그렇게 한겹 쌓였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고르고 있는데 눈 앞에 이 책이 보였다. '노희경 작가의 책이었네.' 한권 빼내서 읽었더니 전개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두권 모두 빌려서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선입견이 컸다. 분명 슬플거라고, 그래서 눈물이 펑펑 날 것 같아서 안보고 싶은 드라마였다. 그런데 노희경 작가의 이름을 보고 호감이 생겼다. 그녀가 쓴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의 송혜교와 현빈을 좋아했다. 전체 드라마를 챙겨보지는 않았지만, 송혜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한국의 여배우였고 그의 연기 스타일을 한참 좋아했었으니까.
소설은 거침없이 술술 읽혔다. 말맛도 있었다.(년아, 썅. 생각나는게 왜 다 욕인지) 드라마를 보진 않았지만 알고있는 등장인물이 몇 있었다. 완이의 모습에서는 고현정을, 난희는 고두심, 연하는 조인성을 떠올리며 읽었다. 그리고 희자, 정아, 충남, 기자, 영원, 성균, 성재, 일우, 민호는 어떤 배우들이 연기할 지 궁금해하면서.
후반부에 내용이 어두워져서 읽는 시간동안 힘이 빠지고 우울했는데 결말은 우선 해피엔딩이었다. 하지만 안다. 언젠간 일어날 일들인 것을. 끝이 있다는 걸.
[디어 마이 프렌즈1]
p272
'경험 없는 내 자신이 조개껍질처럼 작고 초라하게 느껴지고, 온갖 세상일을 겪은 늙은 어른들이 거대하고 대단해보일 때가 있다. 죽은 자는 죽은 자, 그래도 산 자는 살아야 한다고 분명한 선을 그을 때.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확실히 분간할 때. 어쩔 수 없는 모든 것을 순리라고 받아들을 때. 나는 어른들이 산처럼 거대하고 위대하고 대단해 보인다.'
p278-279
살면서 아무리 경험이 많은 어른이어도, 이 세상에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경험은 그 누구에게나 한 번뿐이다. 그래서 슬픈 건 어쩔 수 없이 슬픈 것이었다. 늙은 딸이 늙은 엄마를 그렇게 보냈다.
정아의 엄마가 돌아가시고 완이 남긴 독백. 장례식장의 풍경은 내게 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마주해야 할 순간이 있겠지. 소중한 누군가를 잃었는데 사무적인, 행정적인 절차를 밟는 것은, 그일을 해내는 것은 어른이된다는 의미일까. 내게 무슨일이 일어나건 세상은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는걸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슬프지만 선을 그어야 하는 것.
p364
이건 순전히 나를 위한 일이었다. 이젠 똑바로 마주 보리라. 피하거나 도망가지 않고, 끙끙거리며 혼자 속앓이하지 않고, 전전긍긍 기대거나 매달리지 않고, 두려워하거나 겁먹지 않고.
완이가 엄마와 친구들의 이야기를 쓰기로 마음먹었을 때, 연하에 대한 그리움으로 동진 선배를 찾는 일을 멈추기로 했을 때, 용기를 낼 때의 대사. 자기 확신의 말이 좋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볼 때 미친짓인걸 알지만 당사자에겐 힘든일. 동진 선배와 완의 관계가 그랬겠지? 그래도 그건 안돼. 남에게 상처주면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 나에게 떳떳하게 살기.
[디어 마이 프렌즈2]
p45
여자에게 늙는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몸이 늙어 기저귀를 차도 예쁘다는 말에 기분 좋아지고, 사랑 앞에 여전히 가슴이 설레고, 그런 감정은 젊으나 늙으나 똑같았다. 하지만 한 가지, 여자가 늙어 좋은 게 있다면 친구를 위해 사랑도 접을 수 있는 여유와 배포를 갖게 된 것 아닐까.
충남이 희자를 위해 성재에 대한 마음을 접을 때의 이야기. 외면도 내면도 아름답게 나이들고 싶다.
어렸을 때는 오히려 감정에 무뎠던 것 같다. 지금은 경험이 많아지면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의 폭도 넓어진 것 같다. 낭만이 있는 삶을 살아야지.
p72
내일을 기약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세월이 가르쳐준 삶에 대한 가장 큰 감각은, 지금 이 순간을 오롯이 즐기는 것뿐이라는 걸 그들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현재의 삶에 충실하는 것.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 있을 때 잘하기...
p108
어떤 길이든 그 길에 들어서기 전이 가장 두려운 법이다. 한발 내디뎌 내 발자국으로 길을 내고 보면, 그 길 위엔 나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괴물이 숨어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괴물은 언제나 내 마음이 만들어내는 상상 속 두려움일 뿐이다.
꽤나 신중했던 과거를 지나쳐, 이젠 적당히 생각하고 행동하는 삶을 산다. 신중했다는 것 이면에는 남의 시선을 의식했던 내가 있다. 중요한 건 바로 나. 가끔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착각할 때가 있다. 파헤쳐보면 본질은 다른 것일 때도 있다. 나로 사는 법. 원하는 걸 확실하게 잡아내는 것.
p230
참 이상한 일이다. 우리에게 엄마는 뭘까? 어떤 존재일까? 나를 부담스럽게 하다가도 '엄마'라는 말만 뱉어도 눈물이 나는 건 왜일까?
그러게나 말이다. 정말 이상한 일이야. 엄마를 떠올리면 눈물부터 나올 때가 있다. 그래서 초등학생 때 수련회 가면 하는 촛불의식이 싫었다. 꼭 눈물을 끄집어 내는 말만 하고, 분위기를 만들고. 커서도 슬픈 영화는 정말 울고 싶을 때 아니면 잘 보지도 않는데, 그런 내가 이 책을 읽었다니 어떤 변화인건까? 감정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인지. 번역에서 기인한 여러가지가 있겠지 뭐~
드라마도 봐야지.
기대된다.
연하와 완이 그리고 꼰대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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