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의 끄적이는 나날
[드라마] 한여름의 추억 본문
날씨는 아직 쌀쌀하지만 바깥 풍경은 이미 초록색으로 가득 차있어서, 여름 냄새가 맡고 싶어서 고른 드라마. 총 2회의 단편 드라마라 목포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모두 시청했다. 서른일곱 라디오 작가의 과거의 연애와 현재의 상황을 다룬 단막극이다. 초반에 나온 소개팅 장면에서 상대방 남성의 무례한 언행과, 25살 같은 팀 후배의 생각 없이 내뱉는 말이 조금 거슬렸고 주인공과 연애 및 썸을 탄 남자가 총 4명이라 회상 장면이 반복될 때 조금 지루하게 느껴지긴 했다. 하지만 현실을 반영한 내용과 대사가 좋았다. 일부는 공감하며 보고 결말은 조금 씁쓸했다.
한여름이 달리기 시합에서 선두로 달리며 과거의 즐거웠던 연애의 순간을 회상한다. 일등 할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넘어진다.
해준아, 난 안 늙을 거다. 이렇게 물기 나는 채로 평상 살 거다.
난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그치? 나는 그럴 수 있을 것 같잖아.
- 제일 오래 사귀었던 남자친구와의 회상 씬에서
결국 그녀의 시간은 멈춘다.
너는 나와 함께했던 시간 내내
어서 내가 지나가주길
성큼 다음 계절이 다가와 주길
바라고 바랐겠지만
이것 봐, 나는 그리 길지 않아.
이렇게 찰나인걸.
주인공의 이름과 계절을 모두 포함하는 중의적인 표현이 멋있다. 덥다 하는 여름도 찰나인걸.
저는요, 외로워요.
외로워서 누가 내 이름 한 번만 불러줘도 울컥해져요. 밥 먹었냐는 그 흔한 안부 인사에도 따뜻 해져요.스치기만 해도 움찔하고 마주 보기만 해도 뜨끔하고, 그러다 떠나보내면 말도 못 하게 시려요.
그런 저한테, 그리고 그쪽이 연락을 주고받는 수많은 여자들한테 이런 짓 하지 말아 주세요. 당신이 한번 실패한 뒤에 무엇도 가지려고 들지 않는다는 거 저도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왜 실패를 나아가는 성장판으로 삼지 않는 거죠?
저는요, 어릴 때 잠깐 만났던 남자한테서는 마음 감추고 내숭만 떨면 아무도 내 진심 몰라준다는 걸 배웠고요. 스무 살쯤 지겹게 싸워댔던 남자친구한테서는 헤어지자는 말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걸 배웠어요. 그리고 가장 오래 만났던 남자한테서는 내 욕심 때문에 상대 진심 짓밟으면 벌받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 외에도 비 오는 날은 어떤 음악을 들으면 좋은 건지 와인은 어떤 게 비싸고 맛있는 건지 맥주를 맛있게 마시는 방법은 뭐고 티셔츠의 핏은 어떻게 입는 게 이쁜 건지조차 다 모두 다 내 지난 연애를 통해 배웠어요. 그리고 그쪽을 포함한 날 간만 보고 도망친 수많은 남자들한테서는요, 내가 상처받지 않게 치는 울타리가 다른 사람한테는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어요.
그런데 왜 나보다 나이도 많고 결혼도 해본 오제훈씨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거죠. 그리고 지금 이 봉투를 통해 깨달은 건 '나 진짜 그쪽한테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 한여름의 추억 2화 중
연애를 하면 아무래도 심적으로 깊은 교류를 한다.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깨달음을 얻고, 아픔을 겪으며 성장을 한다. 지난 연애를 통해 나는 더 나은 사람으로 발전 했고(아마?) 연애중인 내 모습이 좋다. 나를 스쳐간 사람들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할까. 내가 영향받은 만큼 상대방에게도 나의 취향이 묻었겠지? 마냥 나이스한 내가 아닌 다양한 모습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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