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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의 시작

Jay 2022. 12. 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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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만 보던 풍경이 내 앞에 있다. 신발 모양으로 생긴 이탈리아에서 발뒤꿈치 부분에 위치한 풀리아주, 내가 있는 곳이다. 얼마 만에 온 해외여행인지. 아직도 어안이 벙벙하지만 어쩌면 시차 적응 중이라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본격적인 여행의 첫날인 오늘은 피곤한 것도 모르고 들떠서 쉴 새 없이 돌아다녔다. 이번 여행은 숙소에 많은 투자를 했는데 지금 묵는 마세리아 나르두치(Masseria Narducci)가 그 시작이다. 화이트 톤의 깔끔한 방, 시골 농장 분위기의 야외 조식 장소, 쾌적한 수영장과 친절한 사람들. 그리고 교통편도 좋아서 방문 예정인 폴리냐노 아 마레, 스머프 마을같은 알베르벨로, 오스투니가 모두 가깝다.

올해 초만 해도 이탈리아 여행을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가고 싶은 해외여행지가 다양해서 후보군이 많았기 때문이다. 영화 ‘콜미 바이 유어 네임’ 속 이탈리아 분위기를 상상만 했지 이렇게 직접 방문할 줄이야. 따지고 보면 이번 여행지 선택의 중요한 역할을 했던 요소는 모두 영화다. 운명의 상대를 찾아 이탈리아 밀라노로 떠나는 중국 영화 ‘온리 유’, 10년의 약속을 지키러 ‘피렌체’를 오르는 명작 ‘냉정과 열정 사이’. 이탈리아에서 피렌체로 그리고 남부 풀리아주까지의 여정 변화로 이어졌다.

아침 일찍 기분 좋은 조식을 먹고 상쾌한 날씨와, 여행을 왔다는 즐거움에 신이 나서 빠르게 준비를 마쳤다. 폴리냐노 아 마레의 해변으로 일광욕을 하러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절벽 아래에 있는 투명한 바닷가로 굉장히 유명한 이곳은 사진과 영상으로 많이 봤음에도 불구하고 실물은 훨씬 더 멋졌다. 아직 오전인데도 해가 무척 뜨거워서 모래사장 한편에 자리를 잡고 바로 바다에 들어갔다. 

여름휴가를 위해 몇 달 전부터 배운 수영을 써먹을 수 있어서 뿌듯하다. 자유롭게 유영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도 함께 즐겼다. 용기 내서 절벽 다이빙에도 도전했는데 정말 짜릿했다. 수영을 못하던 때에는 염도가 높아서 가만히 있어도 둥둥 뜬다는 사해에 가고 싶었다. 그곳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하지만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이유 때문은 아니다. 하나를 배우면 그다음이 새로운 경험으로 확장되어 내게 돌아온다. 어렵게만 느껴지는 일도 막상 하고 나면 별거 아닐 때가 있다. 왜 그렇게 두려움을 가졌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막연한 두려움의 원인은 ‘그냥’인 것들이 많다. 물이 왜 무서웠을까? 분명 처음엔 명확한 이유가 있었을 테지만 시간이 쌓이면서 단지 ‘그냥 무서움’으로 정해졌다. 수영을 배운 것도 두려움 극복보다는 이것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겠다는 목표가 있었기에 지치지 않고 즐겁게 배울 수 있었다. 바다 위를 헤엄치는 순간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마치 처음부터 수영을 할 수 있던 사람처럼 말이다. 신기했고 한편으론 대견했다.

실컷 놀다가 낮잠도 한숨 잤더니 피부가 많이 익었다. 집으로 돌아갈 무렵엔 구릿빛이 되어있겠지? 이번 여행을 오기 전 여러 상상을 했다. 편안한 리조트, 자유롭지만 신경 쓴 옷차림, 햇빛에 적당히 그을린 피부, 신선한 해산물, 그리고 젤라또, 멍 때리기, 사색, 낮잠  자기.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 좋다.

젤라또를 하나 사 먹고 동네 구경을 하며 여유로이 시간을 보내다 우리는 ‘그로타 팔라체제’라는 절벽 동굴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멋진 풍경으로 굉장히 유명한 곳이다. 2주 전에 미리 저녁 예약을 했다. 사방이 아름답고 곳곳이 멋이 있다. 시기적절하게 나오던 코스 요리와 트럼펫 연주, 차츰 붉어지는 하늘을 보며 낭만적인 식사를 했다. 영화 같은 순간이었다. 아니 분명히 영화였다. 몇 년이 지나도 오늘이 오래도록 기억날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야경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와인 두 잔으로 살짝 취기도 올라 계속 미소가 지어지는 밤이다. 달콤하고 향긋한 꿈을 꾸는 것 같던 첫째 날. 여행은 시작됐다. 

 


 

[참고] https://www.youtube.com/channel/UCBtmRin-fYPy2qQPixbQIKg/featured  (이탈리아 여행편)

Masseria Narducci(팜하우스, 수영장, 야외 조식)
폴리냐노 아 마레와 그로타 팔라체제(동굴 절벽 레스토랑)

(사진 출처: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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