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의 끄적이는 나날
꿈 공모전 3편 본문
돌고 돌아 다시
5년간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잠시 휴식을 갖기로 했다. 쉬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에 관하여 생각해 보고 싶었다. 원래 계획은 퇴사가 아니라 이직이었다. 다달이 들어오는 월급과 어느 범위 안에서 원하는 만큼의 소비를 할 수 있는 생활이 싫지 않았다. 다만 회사에는 넌덜머리가 났다. 경력을 완전히 변경해 볼까 아니면 다른 듯 비슷한 분야를 더 찾아볼까 고민하며 구직 사이트를 들여다봤다.
‘이런 마음이라면 지금 다니는 회사와 다를 게 뭘까’, ‘직장, 사람, 업무의 변화가 전부일까? 시간이 지나면 결국 같은 이유도 매너리즘에 빠지는 건 아닐까’. 내가 원하는 게 맞는 것인지 또 무엇인지 쉽게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급하게 이직하기보다는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갖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무엇을 하든 계획하지 않고서는 편히 쉬지 못하는 성향의 나는 퇴사 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이 많았다. 우연히 휴대폰 메모장을 열었다가 언젠가 적어 둔 목포살이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마침 5월의 입주자를 모집 중이었고 이미 프로그램도 짜여 있었다. 그저 일정에 맞추어 생활하고 쉬다가 오면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휴식을 위함이었지만 프로그램의 메인은 사실 독립 출판이었다. 쉴 틈 없이 프로그램을 참여하고 열심히 글을 썼다. 6주는 쉼이라기보다는 움직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애초 계획과 달리 너무 놀기만 한 것 같아서 정말로 쉴 시간을 갖기로 했다. 한 달만 더 머무르려고 했는데 막상 지내다 보니 목포는 기대 이상이었다. 오래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고, 자연환경은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마음이 편했다. 좋아하는 것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목포를 떠날 이유가 없었다. 결국 월세를 얻어 생애 첫 독립을 했다. 가족이 살고 있는 서울도 아니고 연고도 없는 목포에서 1인 가장이 되어버렸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하고 쉬고 싶으면 쉬면서 6개월을 보냈다. 날씨가 맑으면 자전거를 타고 삼학도 공원 벤치에서 책을 읽고,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일상을 기록하고, 친구 집에 초대받아서 같이 밥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봄, 여름, 가을이 지나 겨울이 되었다. 추워진 날씨와 하나씩 생기는 자취 물건들로 집, 그리고 내 공간에 대한 애정도 함께 커졌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즐거웠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을 하는 시간이 쌓여갔다. 중국어 공부에 대한 마음이 생긴 건 자연스러운 수순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번엔 번역이었다. 통번역대학원이라는 높고 멀었던 목표가 영상 번역으로 옮겨갔다. 달라진 건 분야뿐만이 아니라 나의 마음이었다. 이제껏 끝을 생각해서 시작이 어려웠다. 나보다 앞선 무수한 사람들을 보며 내가 할 수 없는 이유만 찾았다. 중요한 건 일단 해보는 것인데 생각이 많아지니 두려움만 쌓였다.
다가오는 2월에는 온라인 영상 번역 수업을 신청했다. 그리고 당장 눈앞 과제에만 집중할 것이다. 더 나아갈지 멈출지는 해보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다. 맞으면 계속하면 되고 맞지 않으면 다른 걸 찾아 하면 된다. 과거보다 현재의 내가 좋다. 그리고 미래에는 또 어떤 재미난 일이 펼쳐질지 나는 너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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