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의 끄적이는 나날
[분노클 2주차] 직장에서 생긴 일 본문
[퇴고]
일이 힘들어서 쉬고 싶어요
이미 퇴사한 첫 번째 직장이지만 그날을 생각하면 어김없이 화가 난다. 분노의 대상은 그 상황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나일까, 상황을 만들고 사과하지 않은 그녀일까. 어쩌면 나는 아직 분노하는데 장본인에게는 별거 아닌 일이라 기억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에 열이 받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직장을 다니면서 맡는 여러 업무 중 특별히 더 하기 싫은 일이 있다. 내게 그 일은 기획서 작성이었다. 연초가 되면 어김없이 많이 하는 작업이라 나도 프로젝트 하나를 맡아서 후배 한 명과 함께했다. 진행 상황 보고와 상사의 피드백이 필요했기 때문에 퇴근 전 그날의 작업물을 팀 내 단톡방에 공유했다. 마감 여유가 넉넉했지만 며칠 간 별다른 피드백도, 질문을 해도 되돌아오는 답변도 없었다. 제대로 확인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꺼내 보았다가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이냐는 상사의 되물음에 황급히 숨겨버렸다. 상사는 워낙 많은 기획서를 살폈던 노련한 분이기에 ‘다 알아서 하시겠지’라는 마음으로 내 할 일을 했다. 그렇게 제출을 하루 앞둔 날 내 선에서의 최종본을 공유했다. 상사는 “기획서 쓰느라 고생했어요, 내가 문구만 조금 손보면 될 것 같으니 시간 맞춰서 퇴근해요”라는 말을 남겼고 난 퇴근했다.
실무 담당자는 나였기에 내 손으로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퇴근 지시를 받았기도 했고 그녀가 수정을 끝마칠 때까지 회사에 남아있긴 싫었다. 열심히 일했고, 당일의 내 업무는 끝났고 큰 수정은 없을 거라 믿었다.
다음날 출근 후 제일 먼저 확인한 건 상사의 최종 수정 파일이었다. 전달된 파일 옆의 시간을 확인하니 밤 10시가 넘어있었다. 우리의 퇴근 시간은 6시, 단순 수정이었다면 7시나 늦어도 8시 일 텐데 의아한 마음으로 기획서를 클릭했다.
분명 이 파일이 맞는데, 달랐다. 상사는 그저 한마디만 했다. “최종본 공유했으니 오타 한 번 더 확인하고 경영팀에 제출하세요.” 우선은 제출이 먼저이니 상황은 뒤로하고 할 일을 했다. 그런데 제출을 완료하고 한참이 지나도 상사는 아무 말이 없었다. ‘까먹으셨나’, ‘에이 설마’, ‘정말 할 말이 없는건가’ 속으로는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지만 상사에게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차라리 두근거리는 심장을 잡고 용기 내볼걸. 몰랐다. 하지 못한 질문을 이렇게 오랜 시간 품고 있을 줄은.
함께 기획서를 작성한 후배 역시 멋쩍은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했을까. 또 어떤 말을 할 수 있었을까. 화살의 방향은 계속 안으로 향했다. ‘내가 더 잘 만들었어야 했는데’, ‘상사는 나를 믿어서 기획서 열람을 전날까지 미룬 게 아니었을까’, ‘후배가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풀어내지 못한 의문은 가시가 되어 끊임없이 나를 찔렀다.
어떤 사건에 대한 원인으로 나를 지목하는 건 쉽다. 당사자에 대놓고 싫은 소리를 할 용기도 없으니깐. 장점이라고 하면 같은 상황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열심히 검열한다. 능력 상승에 대한 욕구가 동기가 되어 날 발전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반복되는 채찍질은 사람을 병들게 하고 끝에는 그마저도 소용이 없어진다. 내가 맡은 일에 대하여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 내 동료가 잘되든, 잘 안되든 신경 쓰이지 않는다. 그곳에 대한 애정도 미움도 없다. 남아있을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퇴사의 이유가 그저 “힘들고 쉬고 싶어서”인 줄로만 알았다. 그 속에는 과거에 발생한 사건들이 올바르게 해결되지 않아서, 깊게 패거나 쌓이기만 했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어버려서가 숨어있었다. 그 많은 일을 말로 다 설명할 수가 없어서, 나도 상대방도 받아들이기 편한 문장이 되었다.
“일이 힘들어서 쉬고 싶어요”
**덧붙이기
글 쓰면서 나 당시에 상처 많이 받았구나를 새삼 깨닫는다. 넘겨버린 줄 알았고, 이런 일을 기억하는 내가 싫은 적도 많았다. 왜이렇게 나한테 박하게 굴었는지 참. 나쁜일을 오래 기억하는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란걸. 그만큼 충격이었고, 큰 사건이라서 였다는걸. 더 이상 내 탓 금지. 화살 돌리기 금지.
[원문]
일이 힘들어서 쉬고 싶어요
업무는 기획서를 작성하고, 작성한 기획서를 통해 수주한 행사를 준비하고 실행하고 마무리를 짓는 일로 이루어져 있었다. 기획서를 쓰는 일은 절대 쉽지 않았지만 자주 작성하다 보니 사용하는 양식은 어느 정도 고정이 되어 있었고 매 행사에 따라 내용만 약간 변형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기획서 쓰는 일은 부담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는 거지 내가 받아들이는 건 그렇지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초에는 수주한 행사가 없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 기획서 작성 업무를 한다. 나 또한 후배 한 명과 함께 해당 작업을 하게 되었고 매일 퇴근 전 그날의 작업물을 팀 내 단톡방에 공유했다. 진행 상황 보고와 상사의 피드백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넉넉한 기간이긴 했지만 며칠 동안 별다른 피드백도, 질문을 해도 되돌아오는 답변이 없었다. 상사는 워낙 많은 기획서를 살폈던 노련한 분이기에 ‘다 알아서 하시겠지’라는 마음으로 내 할 일을 했다. 그렇게 제출 마감을 하루 앞둔 날 내 선에서의 최종본을 공유했다. 상사는 “기획서 쓰느라 고생했어요, 내가 문구만 조금 손보면 될 것 같으니 시간 맞춰서 퇴근해요”라는 말을 남겼고 난 퇴근했다.
애초에 실무 담당자는 나였고 내가 만든 자료이기에 먼저 집에 가면 마무리를 내 손으로 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긴 했지만 상사가 퇴근 지시를 내렸기도 했고 수정을 끝마칠 때까지 계속 남아있긴 싫었다. 열심히 일했고, 당일의 내 업무는 끝났고 큰 수정은 없을 거라 믿었다.
다음날 출근 후 제일 먼저 확인한 건 상사의 최종 수정 파일이었다. 전달된 파일 옆의 시간을 확인하니 밤 10시가 넘어있었다. 우리의 퇴근 시간은 6시, 단순 수정이었다면 7시나 늦어도 8시 일 텐데 의아한 마음으로 기획서를 클릭했다.
분명 이 파일이 맞는데, 달랐다. 상사는 그저 한마디만 했다. “최종본 공유했으니 오타 한 번 더 확인하고 경영팀에 제출하세요.” 우선은 제출이 먼저이니 상황은 뒤로하고 할 일을 했다. 그런데 제출을 완료하고 한참이 지나도 상사는 아무 말이 없었다. ‘까먹으셨나’, ‘에이 설마’, ‘정말 할 말이 없는 건가’ 속으로는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지만 상사에게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함께 기획서를 작성한 후배는 멋쩍은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했을까. 또 어떤 말을 할 수 있었을까.
화살의 방향은 계속 안으로 향했다. ‘내가 더 잘 만들었어야 했는데’, ‘상사는 나를 믿어서 기획서 열람을 전날까지 미룬 게 아니었을까’, ‘후배가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풀어내지 못한 의문은 가시가 되어 끊임없이 나를 찔렀다.
어떤 사건에 대한 원인으로 나를 지목하는 건 쉽다. 남 탓을 한다고 그에게 대놓고 싫은 소리를 하는 성격도 못되니깐. 원인을 나에게서 찾으면 같은 상황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검열을 더 많이 하기도 하고, 능력을 키우고 싶은 마음이 생겨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런데 나를 탓하는 동시에 방어력도 함께 상승한다. 결국엔 상처받지 않기 위해 감정 사용을 멈춘다. 자기반성에서 성장 욕구로, 하지만 반복된 지친 마음은 결국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애증이라도 남아있으면 모를까 “애”도 “증”도 사라져 버린 마음엔 “무”만 있을 뿐이었다. 내가 맡은 일을 끝내지 않아도, 동료가 잘 되든 잘되지 않든 정말 나와 아무 상관이 없어진다. 그곳에 남아있을 이유가 사라진다.
퇴사의 이유가 그저 “힘들고 쉬고 싶어서”인 줄로만 알았다. 그 속에는 과거에 발생한 사건들이 올바르게 해결되지 않아서, 깊게 패거나 쌓이기만 했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어버려서가 숨어있었다. 그 많은 일을 말로 다 설명할 수가 없어서, 나도 상대방도 받아들이기 편한 문장이 되었다.
“일이 힘들어서 쉬고 싶어요”
[피트백 정리]
* 덜어내기 --> 원문을 쓰면서 이미 한 단락을 덜어낸 것인데도, 피드백 받은 내용은 또 덜어내기 였다. 읽다보니까 정말 내 업에 대한 긴 글이 필요가 없다. 구구절절의 습관을 점점 정리해보기. 담백한 글쓰기.
*3주차: 짧게 쓰는 연습하기. 수식어 제거 및 단락 압축. 관성/관습적 글쓰기 벗어나보자.(ex. 주마등처럼~~~)
*내 글의 핵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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